※해당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년 뒤에 토니 타키타니의 아버지가 죽었다. 남겨진 것은 유품인 악기와 낡은 재즈 레코드 수집품뿐이었다.
산처럼 쌓인 레코드를 처분하자 토니 타키타니는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외톨이가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영상으로 담아낸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몇마디 대사를 제외하고는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 '토니 타키타니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내레이션이 운을 떼면 배우들의 입에서 대사가 발설되는 꽤나 독특한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건데 자꾸 소설책을 읽어주는 팟캐스트나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토니 타키타니의 본명은 사실 토니 타키타니다.'
그가 이름을 말할때면 사람들은 그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냥 쳐다봤고, 그 덕에 토니는 소심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어머니는 빨리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재즈 공연을 한다며 방랑생활을 했다. 토니는 자연스럽게 고독하게 자란다.
그는 무언가를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재능이 있어 그림을 전공하는데, 그런 그의 그림을 보며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정이 없어' 또는 '체온이 안 느껴져'라고 말한다. 체온이 없는 것, 껍데기만 있는 것을 그려내는 것에는 누구보다 뛰어났으므로 그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된다.
감정이 평생 결여되어있었던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15살 차이가 나는 에이코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 그는, 나이 차이와 그녀에게 오랜 애인이 존재한다는 장애물을 넘어 그녀와 결혼에 골인한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평생 고독했으나 고독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던 그가 행복한 결혼생활이 시작되며 고독의 존재를 깨달아가게 된다는 거다. 지금 함께인 존재가 사라지게 되면 다가올 고독, 외로움을 두려워하게 되며 그는 처음으로 그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을 통해 외로움을 깨닫는다.' 역설적이지만 삶을 관통하는 이치다.

가져본 자만이 잃을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 곁에 누군가 있었던 사람만이 외로움을 알 수 있다. 무언가가 채우고 있었을 때만 그것들이 없어졌을 때 빈자리를 느낄 수 있다. '존재'가 있은 후에만 '부재'가 성립할 수 있다.
고독하다는 건 누군가와 사랑했다는 증거고 외롭다는 건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는 증거다.토니 타키타니는 고독은 감옥과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감옥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죄를 저질러버린 이만이 감옥에 갇히듯 사랑을 저질러버린 이에게만 고독이 허락된다.
처음부터 외톨이였던지라 고독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그가 죽은 아내의 옷이 다 빠져나간 텅 빈 방에서 고독해한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외톨이로 살아갔던 그가 커다란 상실 뒤에 처음으로 느낀 아픔과 고독은 어쩌면 삶이 주는 조금은 모순적인 형태의 '선물'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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