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중쇄를 찍자!>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최근에 봤던 '나기의 휴식'의 여주인공인 쿠로키 하루가 나오길래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꽤 재밌게 보고 있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교훈주기' 가 거의 매회 등장하는데, 너무 억지스럽지만 않으면 난 그게 싫지 않더라)
체대에서 유도를 전공하며 일본 국가대표를 목표로 하던 코코로가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유도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흥도관'이라는 출판사에 취직하게 되고, 주간 만화 잡지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아직 중간 정도까지 밖에 보지 못했지만 보고 있으면 매 회 어떤 '마음가짐'이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1화를 보면서는 오랜 세월 자신의 소명' 이라고 할만한 일을 계속해 나가는 마음과, 자신이 가진 힘을 올바른 곳에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면접에서 회사 사장님을 유도 엎어치기로 날려버리고 당당히 입사한 코코로는 주간지 '바이브스'에 신임 편집자로 배치되고 부편집장인 이오키베를 따라 만화계 거장인 미쿠라야마 선생과의 미팅에 따라가게 된다.
미쿠라야마는 마감을 늦은 적도, 연재를 중단한 적도 없이 30년 이상 주간지 연재를 계속해오면서도 늘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거장이다. 거기다가 어시스턴트들에게도 잘하고 인품까지 좋은 성인군자 같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일도 잘하고 인품도 좋고 어느면으로 보나 완벽해 보이는 사람은 아무래도 드라마나 만화에만 존재하지 않을까 싶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전 상사 중에도 이런 분이 계셨다. 매사 열정과 책임을 다한다. 후배들이 하는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먼저 파악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도와준다. 막히는 부분은 어떻게든 해낼 수 있도록 직, 간접적으로 서포트한다. 여러 면에서 미쿠라야마라는 사람과 닮은 면이 있는 분이셨다.
그런 미쿠라야마에게는 여러 명의 어시스턴트가 있는데, 그중 데뷔가 늦어져서 폭발해버린 어시스턴트 하나가 폭언을 던지고 나가버린다. 거기에 미쿠라야마의 작품에 대해 '시대에 뒤떨어지는 쓸모없는 콘텐츠'라는 네티즌들의 반응들을 친히 모아 팩스로 보내주는 사건이 벌어지고 미쿠라야마는 큰 충격에 빠져 돌연 연재 중단을 선언한다.
다들 곤란해하며 어떻게 해야할지 답을 못 찾고 있는 동안, 담당 편집자도 뭣도 아닌 신입사원이지만 '뭐라고 하고 싶다'며 고민하던 코코로가 의외의 곳에서 힌트를 찾아낸다. 코코로가 찾아온 힌트 덕에 미쿠라야마는 다시 작업할 용기를 얻게 되고, 연재를 재개하게 되며 1회는 마무리된다.
30년 이상 매주 다가오는 마감에 늦지않고 일을 해나간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해본다.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해나갈까. '밥벌이'로 생각했다면 힘들지 않았을까. 드라마 속 거장이 말하듯, 자신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게 있어야만 가능할 것 같다.
'뭐라도 하고 싶다' 며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던 주인공 코코로의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1화부터 잘 나타나지만 매 화 코코로의 아주 선하고, 아주 정직하고 아주아주 올곧은 마음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는 게 이 드라마의 특징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힘을 바른 곳에 쓰는 집중 한다.
'정력선용, 자타공영'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말해준 바에 따르면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올바른 곳에 사용하며 타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감사해야 한다. 서로 신뢰를 키우며 함께 도우며 살아갈 수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유도의 창시자가 했다고 하는 말로, 드라마에서 코코로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말이다.
아마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함축하고 있는 문장인 것 같다.
자신이 가진 힘을 올바른 곳에 쓴다는 것은 꼭 무술에서 말하는 육체적인 '힘' 만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능력, 재능, 기술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올바른 곳에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생각해본다. 나는 내가 가진 최대한의 능력과 재능을 올바른 곳에 쓰고 있나? 그런데 그전에, '올바른 곳' 이란 어떤 곳에 쓰는 것을 의미하는 거지?
자신의 힘을 '올바른 곳' 에 사용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을 이전보다 조금이나마 나은 곳으로 만드는 모든 행동이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을까. 꼭 생명을 살리는 의술을 펼치는 것이나, 자선사업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회사에서 일하며 상품과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는 것에 힘을 보태는 것, 상품이 소비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판매하고 배달을 하는 것, 음악, 영화 등 전에 없던 창작물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전달하는 것. 그 외에도 세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좋아지게 만드는 모든 일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좋아하는 일, 내가 꿈꿔왔던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 일을 하면서도 보람이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소명을 실현하지 못하고 밥벌이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코코로 역시 어릴때부터 꿈꿔왔던 '유도 국가대표' 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게 됐지만 회사에서 자신이 가진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해나간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주변 사람들이 처한 문제에 직,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는 코코로를 통해 어릴 적 원대했던 꿈, 장래희망 같은 것 을 실현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매일매일 자신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으로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있을 거라고 조용히 응원을 보내는 것 같았다. (202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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