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웹서핑 하다가 무심결에 봤던 문장이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누가 했던 말인지가 기억 나지 않아서 다시 찾아보려고 해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기억 속에서 대충 끄집어 내 보자면, 그 문장은 대충 이랬던 것 같다.
"별로인 영화도 하이라이트만 보면 재미있어 보인다. 우리는 타인의 삶의 하이라이트만을 보게 되고, 우리의 삶은 1초도 편집되지 않은 날것으로 접하게 된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타인에 비해 멋지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불안해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
멋져보이는 인생도 까놓고 보면 다들 아둥바둥하며 살고있다는 거다. 이 문장을 보니 문득 안나 카레니나가 떠올랐다. 안나 카레니나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멀리 호숫가에서, 호수 한가운데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즐거워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보트안에 탄 두 사람이 즐겁기만할까?"
당연히 아니겠지? 햇볕을 따가울거고, 물은 자꾸 튀고, 배는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아 애를 먹일 것이다. 삶이란 어쩌면 즐거움의 연속 보다는 '문제의 연속' 쪽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톨스토이도, 그리고 아까 처음의 그 문장을 말했던 사람도 거기에 동의했던 것 같다.
우리는 사랑을 하는 순간에는 이 사랑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사랑이 끝난 후에는 이별에 고통스러워 한다. 취업을 준비할 때는 직업이 없음에, 직업이 생기고 나서는 직장에서 주는 스트레스에 고통스러워 하기도 한다. 삶이란 그렇게 끊임없이 문제들을 수반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삶을 괴로워만하며 살지 않는다.
고통과 문제를 수반하는 삶 속에서, '그러므로 불행해지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지느냐', 는 결국 스스로에게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통의 순간순간에 희망을 볼 것인가, 절망을 볼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지금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기로 결정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하기를 선택한 사람이란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행복한 일이 생겨서, 행복한 날이 찾아와서, 행복한 미래가 다가와야지 행복해질 수 있는 거라고 믿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행복한 미래'라던지, '행복한 날'은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순차적으로 다가오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게 아닌 것 같다. 무언가를 이룬다고 해서 따라오는 보상같은 것과도 거리가 먼 것 같다.
자전거를 탈때마다 생각한다. 삶은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것 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고. 자전거에 올라 타고 가는 동안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다리가 아파오는 고통도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시원한 바람' 같은 기쁨도 함께 할 것이다. 물론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는 순간에도 다리는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할 것이다. 땀도 멈추지 않겠지. 그러나 다리에 느껴지는 통증에 집중할 것인지 시원한 바람에 집중할 것인지는 나에게 달린 문제이다.
삶은 끊임없이 문제와 고통을 가져오겠지만 틀림없이 즐거움과 행복도 동시에 가져와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둘중에 무엇에 더 집중할 것인가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고통에 매달리는 대신 기쁨에 더 집중하기로 결정하는 매 순간, 나는 내가 결정한 기분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는 순간에는 물론 힘들어 하게 되겠지. 그러나 적어도 이 모든 것을 내 손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모든 고통의 순간에서 기쁨을, 절망의 순간에서 희망을 찾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1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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